프롤로그

“이제까지 느껴본 감각 중 최고야.”
“그냥 녹아 없어지는 기분이야.”
“이게 진짜 행복이 아닐까?”

희미한 속삭임이 귓가에 맴돌았다.
소리는 마치 물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둔탁하고 멀었다.

강재현은 눈을 감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피부를 파고들었던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바닥에 나뒹굴어진 주사기.
끝에 남아 있는 투명한 액체 한 방울.

그리고—

몸이 사라졌다.

중력.
온몸을 짓누르던 그 존재가, 더 이상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아니, 떠오른다고 생각했을 뿐, 사실은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의 팔이 어디 있는지, 다리는 어떻게 움직이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손끝과 공기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피부의 감각이 희미해지고, 신체의 한계를 초월한 듯했다.
더 이상 ‘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단지 ‘존재하는 느낌’만을 느꼈다.

도시의 불빛이 번졌다.
가로등이 일렁이며 황금빛 파동이 퍼졌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로 잔물결이 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시간도, 공간도 무의미했다.
그는 깊고 부드러운 무중력 속에서 떠다녔다.

그렇게,

아무런 걱정도 없이,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아무런 아픔도 없이.

그는 완벽한 해방을 느꼈다.

아, 그래. 이거야.

평온한 미소가 떠올랐다.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그는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그 순간—

황금빛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부드러웠던 물결이 검게 뒤틀리고,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빛이 빠져나갔다.
모든 것이 갑자기 ‘너무 조용’ 해졌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몸이 떠오르던 감각이 사라졌다.
가라앉고 있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의식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눈을 뜨려 했다.
그러나,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았다.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천천히—
아니, 너무 천천히 뛰었다.

“아, 잠깐만…”

말할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숨을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어둠이 그의 시야를 집어삼켰다.

무언가가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흐려지고, 멀어졌다.
번져가던 황금빛이 검은 먹물처럼 퍼져 나가며 시야를 지웠다.

그 속에서—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
흐릿한 실루엣.
그리고,

미소.

노란 스마일.
찢어진 듯한, 뒤틀린 입꼬리.

그것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다가왔다.

그 순간,

머리가 뒤로 꺾였다.

삐걱—

신체가 뒤틀렸다.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고, 등뼈가 기묘한 각도로 휘어졌다.
팔은 늘어졌고, 다리는 구부러진 채 균형을 잃었다.

그것은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부서진 인형 같은 형체.

그때,

그것이 속삭였다.

“더 깊이 들어오겠어?”

모든 것이 꺼졌다.
불빛도, 소리도, 감각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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