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현은 손을 쥐었다.
주사기.
차가운 유리 바늘 끝에
잔잔한 빛을 머금은 투명한 액체.
그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놀랍도록 차분했다.
‘이건… 환각이야.’
스스로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이미,
천천히,
주사기의 뚜껑을 벗기고 있었다.
첫 번째 선택
그는 바늘 끝을 바라봤다.
그리고,
주사기 안의 액체가
잔잔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귓가에 다시 들려오는 속삭임.
“한 번이면 괜찮아.”
“다들 그렇게 말했잖아.”
“딱 한 번이면 돼.”
그는 숨을 삼켰다.
딱 한 번.
그는 바늘 끝을 손가락 끝으로 문질렀다.
“……”
그리고,
천천히—
주사기를 들어,
자신의 팔에 갖다 댔다.
침묵의 순간
순간.
온몸의 감각이 끊어졌다.
“…하.”
가볍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처럼.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듯했다.
가벼웠다.
너무도 편안했다.
세상이… 아름다웠다.
고요했다.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그는 완전한 자유였다.
‘이거야.’
그는 그대로,
바닥에 몸을 기댔다.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리고,
그 순간—
미소를 판 대가
찌이이익—
머릿속 어딘가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했던 세계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빛이 번졌다.
눈앞이 너무도 선명했다.
아니, 선명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세상의 모든 것이
한 조각 한 조각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벽지가 떨렸다.
바닥이 일렁였다.
공기가 손에 잡혔다.
“……뭐야, 이거.”
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피부가 부드러웠다.
아니, 단순히 ‘부드러운 촉감’이 아니라
손끝이 물결처럼 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기분.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거울.
그 속에서,
자신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감각이 변질되다
강재현은 천천히 웃었다.
어깨가 들썩였다.
입술이 스르륵 올라갔다.
‘웃고 싶다.’
이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행복?
아니었다.
쾌락?
그것도 아니었다.
이건—
그는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볼을 살짝 꼬집어 보았다.
그런데,
아프지 않았다.
아무것도.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정을 지운 대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휘청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느낌이 없었다.
몸이 가벼웠다.
모든 게 너무도 편안했다.
이제, 아무 감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거울 속 그는,
완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